티스토리 뷰

장생포고래박물관 생태체험관 다녀왔습니다. 고래박물관은 아무래도 아들이 아직 박물관 관람같은걸 좋아하지 않고 관심도 없어서 건너뛰고요 생태체험관만 다녀왔어요. 생태체험관에선 고래수족관과 어류수족관과 작은 동물들 몇가지를 볼 수 있습니다.

 








돌고래는 1/2층에서 관람할 수 있습니다. 좁은 곧에 갇혀 있는게 불쌍하기도 했지만 아이가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또 기분이 이상하더라구요. 평소에 동물관람을 좋아하지 않는 아이가 고래를 보며 웃으니 엄마인 제가 기분이 다 좋아지더군요. 대체로 가족단위, 아이들과 오는 손님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고래조형물 위에서 너도나도 아이의 기념사진 찍히 바쁘답니다. 아이가 고래위에 올라가서 사진찍는것도 좋아하네요. 요즘엔 사진찍는다하면 저렇게 V를....

 

 




박물관에 온 건 아니지만 이렇게 고래와 함께한 장생포라는 주제로 작은 모형들로 잘 꾸며놓은걸 볼 수 있어요.

고래와 함께한 장생포

장생포의 고래잡이 역사를 살펴보면  1891년 러시아 황태자 니콜라이 2세가 태평양어업 주식회사를 설립한 것이 시초가 되었다. 그 후 러.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하고 포경업을 독점하여 전국에 있는 포경기지를 정비하면서 장생포가 포경업의 중심지로 주목되었다. 광복이 되면서 일본인에 의해 운영되던 회사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전액 공동출자한 조선포경주식회사 설립으로 이때부터 우리나라 포경의 역사가 시작된 것이다.
1970년대 말 고래잡이가 전성기를 이룬 시기에 장생포는 20여 척의 포경선과 1만여 명의 인구가 상주하는 큰 마을이었지만, 1980년에 이르러 무분별한 포경으로 포획량이 줄고 일부 종은 멸종에 이르게 되었다. 그리하여 1986년 국제포경위원회[IWC]에서 상업포경 금지를 결정하면서 고래잡이가 중단되고, 그 후 인근에 공업단지가 조성되면서 포경에 종사한 주민 대부분이 이주하여 마을은 점점 쇠퇴하게 되었다.
장생포의 고래잡이가 한창이던 70, 80년대 6천5백여 명에 이르던 주민 수가 현재는 3천명 정도로 줄었다. 지금은 울산광역시에서 장생포의 고래잡이가 울산을 대표할 수 있는 상징이라고 판단, 울산의 지역문화와 연계시키려는 여러가지 노력을 해 나가고 있다.

장생포는 예로부터 고래잡이 역사가 있었기에 지금 고래문화 사업으로 발전하고 있다고 합니다.

 

 








3층엔 작은 동물들을 볼 수 있습니다. 당근을 사서 토끼와 기니피그에게 나누어 줄수도 있구요. 뭐 대체로 눈으로 보기만 하는거고 동물들이 많질 않아서 어른들 눈에는 별거 없어 보입니다. 앉아서 쉬거나 하기엔 괜찮아 보이긴합니다.

 

 






다시 1층으로 와서 어류수족관으로 가보았습니다. 작은 아쿠아리움에 온 것 같은 느낌은 들어요. 다양한 물고기들이 좁은 공간에...ㅠㅠ 아무튼 여전히 아이들은 좋아하고 가까이서 물고기들을 볼 수 있어서 재밌긴 했습니다.

 

이렇게 생태체험관 방문기를 마치겠습니다. 볼건 고래와 물고기와 작은동물들 밖에 없었지만 그래도 나름 아이가 좋아해서 괜찮았습니다. 휴일에 가서 그런지 사람들도 굉장히 많았구요. 장생포에 여러 구경거리가 있으니 이것저것 보다보면 시간이 금방 지나갈 것 같아요.

 

 




바깥은 이렇게 여러가지로 꾸며져 있습니다. 눈은 즐겁고 바다바람은 시원하고 기분이 좋았습니다. 아이와 함께 새로생긴 키즈랜드(?)에 가려고 했지만 휴일엔 기다려도 못들어가는 사태가 발생하더군요. 대기자도 많고 하다보니 직원과 손님이 싸우는 장면을 보며 저희는 집으로 돌아왔답니다.
5월중에 모노레일이 개장된다고 하니 평일에나 한가할때 한번 타러 와봐야겠습니다. 다음엔 더 길게 시간을 잡고 장생포 전체를 구경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댓글
공지사항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Total
Today
Yesterday